+스포일러 포함
"실수 같았던 순간이 더 멋져보여서 좋았어!"
프란시스는 불과 몇 달전에 자신이 직접 댄서로 참여했던 공연을 기획자의 입장에서 보고 난 뒤 친구에게 말한다.
1. 남자친구보다 더 사랑했던 소피와의 실연(?) 이후부터 영화가 시작한다. 처음엔 소피와 프랜과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보면 볼 수록 '프란시스 하'의 이야기다. 소피와 헤어진 후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프랜은 잘 살고 있는 척 하기 위해 금전상황에 비해 무리한 집을 얻고 멋진 부잣집 친구들을 사귄다. 심지어 해고당한 상황에서 이틀간 파리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두 가지 에피소드. 둘 다 우리가 경험했을 법한 찌질함과 구질함을 보여주는 데 그게 너무 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더욱 즐거웠다.
현금인출기를 향하는 장면. 부잣집 친구에게 큰 소리를 치며 저녁 값을 계산하겠다고 하지만 그녀의 직불카드는 불능. 친구에게 구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현금을 인출하러 가는 데 그 과정이 재미있다. 식사를 거의 끝낸 친구는 식당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지, 가까운 현금인출기는 또 그날따라 고장이지, 멀리까지 엄청 뛰어갔다 오는 길에 자빠지기도 하고 헐레벌떡 식당에 들어선 그녀의 모습은 피까지 흘리며 그야말로 꼴사납다. 현금인출 수수료 3달러에 한숨을 내쉬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함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잘나가는 예술가들과의 저녁식사 장면. 백수인 그녀는 그들고 잘 섞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위축된다. 소피를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친구 앞에선 자신이 훨씬 더 똑똑하다며 소피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 역시 소피 못지않게 지적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형이상학적인 표현을 동원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를 내뱉기시작한다. 분위기는 당연히 어색해졌고 프랜도 더 이상 앉아있지 못 하고 일어선다. 그러며 자신의 실수를 커버하고 여전히 자신은 (찌질하지 않은)충분히 멋진 예술가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틀 간 파리로 간다고 선언(?)해버린다. 통장에 잔고가 없는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되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떠난 여행은 당연히 즐거울 리 없다. 도착 첫날 밤 싱숭생숭한 그녀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수면제를 먹어 다음날 저녁이 돼서야 일어난다. 값비싼 여행의 반나절을 그냥 날려버린 것이다. 서둘러 바깥으로 나가보지만 정작 할 일도 없다. 자신을 초대해주기로 한 친구는 연락이 안 되고,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 한다. 케익 부스러기까지 주워먹는 중에 소피에게서 저녁식사 초대를 받지만 파리 까페에 앉아있는 그녀는 그 자리에 갈 수 없다.
2. 카드값을 메꾸기 위해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명사들에게 술을 따르고 가이드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소피는 온갖 주사를 부리고 약혼자와도 싸운 후 오랜만에 프랜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잔다. 그녀의 삶은 겉보기와는 달리 불행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프랜도 달라진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타인의 시선)이 (자신의)행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아닐까 싶다. 그 후 프랜은 댄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서류작업을 하는 안무 기획자가 된다. 결국 마지막에 그녀가 말했던 '실수', 지금까지의 그녀의 인생에서 그녀가 실수라고 느꼈던 부분, 창피해서 숨기려고 했던 부분들이 실제론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고 이 실수들이 현재 그녀의 삶을, 현재의 그녀를 더 멋지게 만들어 줬다.
3. 30대 초반인 나 역시 프랜과 상당한 동질감을 느꼈다. 감정 이입보단는 동질감이라는 더욱 강한 어조의 단어를 쓸 만 하다.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라면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인 척 연기를 할 때가 종종 있다. 구차해지고 찌질해지지만 아무도 그런 부분을 모르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연기를 했던, 내 모습에 질려버리고 어느 순간부턴 있는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아직 내가 보여주는 모든 모습이 완벽히 나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어찌됐든 그러고나서가 내가 조금이라도 철이 든 때가 아니었나.. 아니. 철이라는 말은 너무 고지식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한 게 아니었나라고 생각한다.
4. 마지막 장면에선 그녀가 드디어 독립해서 살게 된 변두리 아파트를 보여준다. 이전에 비해 낡고 좁은 집이지만,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해보였다. 우편함에 이름표를 넣을 때 우리는 제목의 비밀을 알게 된다. 'Frances Halloway' 라는 이름표가 너무 길어 'Frances Ha'까지만 접어 넣은 것. 나를 남에게 완전히 보여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도 충분하다. '프랜시스 할로왜이'보다 프랜시스 하가 더 멋진 이유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undatable이긴 하지만 ㅎ
5. 이렇게 진지하게 써놓으니 엄청 진지한 영화 같은데 사실 유머와 재기가 넘치는 재밌는 영화! 중간중간에 "풉!"하고 여러 번 터졌다.
6. 아! ost가 상당히 멋지다. 친구가 올해의 장면이라고 강조했던 프랜이 뉴욕 시내를 기분 좋게 달릴 때 흘렀던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 신나고 멋진 음악이다.
7. 엔딩크레딧의 깨알재미. 프랜의 부모 역할로 나왔던 분들이 진짜 프랜, 그러니까 그레타 거윅? 실제 배우의 부모인 듯하다. 엔딩크레딧을 보니 두 부모의 성이 거윅이었다. 흑백영화인데 컬러 디렉팅이었나 그런 업무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할 때 몇 가지 장식의 색깔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네.. 관객을 놀려줄 생각이었나? 그렇담 얄밉지만 너무 깜찍한 요소.
8. 프랜이 이사하면서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서 도로에 내놓은 'FREE CHAIR'는 무슨 의미일까.. ㅠ 내가 의미 부여에 집착을 하긴 하지만, 그게 그녀의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것인지.. 그 개연성을 알지 못하면 너무 답답. 그래서 이 의자의 의미라든가, 굳이 의자만 내버린다는 의미라든가, 아니면 이사하면서 정 들었던 가구를 내버린다는 의미라든가, 아무튼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프랜의 심경 변화와 연관성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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