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셋째 아이를 가지기 전, 팀의 삶은 백스페이스를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파일이었다. 하지만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일방통행만 가능하기에 priceless이며, 의미가 있는 것.
아버지는 죽기 전 팀에게 그들의 능력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팁을 준다. '똑같은 하루를 두 번씩 살아보라.'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지쳐, 지루하고 짜증나는 순간들로만 가득 찼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날들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아버지의 말대로 두 번째 사는 하루는 좀 더 행복하고, 더 다채롭다.
지친 퇴근길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짜증스러운 소음은 두 번째 하루에서는 흥겨운 노래로 들린다. 첫 번째 하루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편의점 계산대 아가씨의 기분 좋고 아름다운 미소를 발견한다. 첫 번째 하루에서 직장동료의 반복되는 실수와 그의 자책을 한심하게 느끼며 그 자책에 무게를 더하는 팀은, 두 번재 하루에서는 동료의 실수를 유머러스하게 받아넘기며 동료의 기분을 풀어준다. 이러한 팀의 같지만 전혀 다른 두 하루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어진다. 아내의 인사 "오늘 힘들었나봐?"라는 질문.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라며 대답하고 옆으로 돌아눕지만, 두 번째에는 "아니! 오늘은 그리 힘들지 않았어!"라 대답하고, 아내도 그의 유쾌한 대답에 기분 좋아진다. 그리고 그들의 하루는 끝까지 즐겁게(?) 마무리된다. 분명히 팀의 두 번째 하루는 첫 번째 하루보다 더 행복하고, 더 즐겁고, 심지어 주위 사람들까지 더 행복하다.
하지만 팀은 아버지의 팁보다 더 의미 있는 팁을 발견한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것. 계속해서 두 번을 살다보면 첫 번째 하루는 그에게 이미 present가 아니라 내일 다시 고쳐쓸 과거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하루 역시 present가 아닌, 수정된 또하나의 어제에 불과하다. 팀에게 선물 같은 하루는 평생 없을 일이다. 이제 첫 번째 하루를 두 번째 하루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에겐 더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닫는다. 진짜 present로 채워진 삶을 사는 것. 하지만 팀의 아버지는 과거에만 살았다. 아들과 보내는 마지막 날, 그는 아들에게 산책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팀이 아닌, 과거의 팀과 함께 말이다. 결국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 꼭 하고 싶었던 일은 현재의 팀과 함께 하는 미래가 아닌, 과거의 한 순간이었다(하지만 이 장면에서 눈물터짐 ㅠ). 팀은 아마도 자신의 아들에게 그들 가문 남자들의 능력을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2. 우리들의 일상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 팀의 하루와 다를 바 없음.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지만, 팀처럼 난 그 능력을 쓰지 않음으로 선택하고(!!!!) 오늘이 두 번째 하루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겠다!
3. 배경음악으로 예전에 유행했던 대중음악들이 나오는 데 응사보는 느낌이었음. 예전 음악이 이리 반가운 걸 보니 나도 나이 먹어간다는 표현을 감히 써도 될 듯.
4. 메리의 부모님이 나오는 에피소드, 메리가 중요한 미팅 자리에 입고 나갈 옷을 여러 차례 갈아입는 에피소드 등은 영화의 분량만 늘임. 동생 킷캣의 에피소드는 좀 더 임팩트 있게 나갔어도 될 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만 되감기가 가능하다는 힌트를 얻게 되는 중요한 사건인데 긴장감이 다소 약.
5. 지난주에 엄마랑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내겐 가끔 이런 신기한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어 꿈에 중학교 동창이 나왔는데(심지어 나랑 같은 반이 아니라 얼굴만 아는), 며칠 후에 우연히 그 친구 소식을 듣는다든가, 십여 년 전의 영화를 우연히 봤는 데 며칠 후, 그 영화배우 열애설이 터진다든가. 하는 기이한 순간들). 엄마에게 "엄만, 과거로 딱 한 번만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물었다. "난 지금 살아가는 이순간 순간이 행복하고 좋다. 굳이 옛날로 되돌아가서 똑같은 날을 살고 싶지 않아. 좋았던 순간은 한번이면 됐지." 단호했다. 우리 가족 중 엄마와 남동생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서늘한 시니컬함에 겁이 나서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삶 자체가 그녀에게 고단한 것인가? 아니면 욕심이 없어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팀과는 다른 이유겠지. 영화를 보고 나와서 잠깐 걷는 데 엄마의 대답이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과 차가운 것에 찔린 것처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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