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1968.4)
글을 쓸 때 그것이 한 문장이 됐든 열 줄이 됐든 빽빽이 넉 장이 됐든 내가 온몸으로 썼던 글은 미숙하대도 부끄럽진 않다. 하지만 온몸으로 쓰지않았던, 그러니까 그런 척하며 썼던 글은 수려한 레토릭과 세련된 문장으로 이뤄졌대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게는 교감을 나누는 사랑의 경험이 없다. 매번 남의 제스처로 사랑을 시작했던 터라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선 계속 연기를 해야했다. 그래서 온몸으로 사랑하는 것이, 교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부정직한 제스처로 사랑을 받고 난 그것이 내가 자초한 비극이라며 상대방에게 이별을 얘기하거나 상대방에게 이별을 얘기듣고 평생을 괴로워하겠지. 온몸을 던질 수 없다면 사랑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아이러니다. 난 사랑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죽기싫은데 죽기만큼 싫은 온몸을 던지는 것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죽은 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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