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중주.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 삶을 닮은 곡. 쉼없이 긴 곡을 연주해야하니 튜닝할 여유가 없다. 그러니 다른 이의 연주에 더욱 집중하여 달라지는 음에 맞춰 연주를 해야한다. 삶에 있어서도 독주를 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과 협연을 하고 싶다면,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미묘하게 달라지는 그 사람의 음에 내 음을 맞출 수 있어야 우리가 함께 하는 연주가 아름다워진다. 하지만 그 전에 나와 협연을 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여기엔 나와 맞는 연주자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겠지만 영화에서도 그랬듯 많은 우연과 인연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푸가"라는 4중주단은 25년 간 3천번이 넘는 공연을 함께 해왔다. 오랜 기간 그들의 삶을 튜닝할 여유없이 공연을 해오다보니 여기저기서 음이 삐걱된다. 열정을 억누르고 실수없는 삶을 살아온 대니얼(한 치의 오차없이 완벽한 연주를 위해 악보에 모든 것을 기록해놓고 매번 악보대로 연주를 한다),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항상 제1바이올린을 받혀줘야하는 자신의 역할이 불행한 로버트, 아버지같은 첼리스트 피터없는 공연은 상상을 못하는 줄리엣, 파킨슨 병 초기를 앓는 첼리스트 피터. 지금까지 순조로웠던 그들의 삶에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리고나서 그들의 마지막 4중주는 확실히 이전 협연과는 다르다(어떻게 달라지는가는 스포일러일수도 있으니 생략).
피터가 강의하는 장면들이 너무 좋았다. 영화 처음에도 나오고 중간중간에 간지처럼 끼여있는 이 장면들은 우리가 삶을 살며 한 번씩은 던졌을 질문에 대한 것이다. 피터는 그 정답을 강요하는 대신(영화에서 피터 자신도 정답을 모른다는 얘길한다) 자신의 연륜에서 비롯된 간접적인 비유로 그 답을 하는데 지혜롭고 현명한 할아버지가 해주는 얘기같다. 알렉산드라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춤을 추는 장면. 생기발랄하고 에너제틱한 젊음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엔딩크레딧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조금만 더 하고 바랬던 몇 안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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