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타자만을 껴안을 수 있고, 사방에서 부여잡을 수 있고, 오직 그의 경계만을 사랑스럽게 매만질 수 있다. 타자의 연약한 유한성, 완결성, 그의 이곳-현재의 존재-등 모든 것은 나에 의해서 내적으로 이해되며, 말하자면 나의 포옹으로 형성된다. 이런 행위 속에서 타자의 외적 존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기 시작하며, 어떤 새로운 종류의 의미를 획득하고, 새로운 존재의 차원으로 태어난다.(••••••)(그래서 나는) 타자의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으며, 그의 존재의 모든 구성적 특징 속에 있는 그를 덮어줄 수 있으며, 그의 육체와 그의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이다.
-바흐친, '말의 미학'중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김행숙, '포옹'-

-바흐친, '말의 미학'중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김행숙, '포옹'-
'넓이와 깊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폐경제와 개인주의 (0) | 2013.08.16 |
|---|---|
| I'm not a rock star (0) | 2013.08.15 |
| 쉼없는 삶 (0) | 2013.08.11 |
| Take this waltz, it's yours now. (0) | 2013.08.04 |
| 의자놀이는 불가피한건가. (0) | 2013.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