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지식인이 자기네 의견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위험한 대중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대중에 대한 공포는 미신과도 같다. 그것은 이런 사고에 근거한다. 즉, 흑인과 백인이 다른 종족이듯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는 어떤 신비스러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전적으로 그들의 수입의 차이일 뿐이다. 보통의 백만장자는 새 양복으로 갈아입은 보통의 접시닦이에 불과하다.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가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이 결코 가난한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난점이 있다. 교육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난에 대해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굶주림조차 교육받은 사람의 체험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대중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무지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접시닦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중에서-
조지 오웰의 말에 따라, 기득권이 노동자에게 좀 더 많은 자유, 즉 자본(경제적 자유)과 여가(시간적 자유), 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현 체제를 전복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됐다...라고 전제한다면 그것은 기득권 혹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내 억울한 삶을 이야기한다고 한들 쇠귀에 경읽기.
차라리 노동자를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공감이야말로 더 우선해야 하는 가치가 아닐까? 단 며칠이라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보려는 정치인... 흠 이 문제에 대해선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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