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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이와 깊이

할멈과 아기


2. 늙은 할멈의 절망

조그맣게 쭈그러든 할멈은 아기를 보자 아주 기뻤다. 누구나 예뻐하고 모든 사람이 즐겁게 받들어주려는 그 귀여운 아기는 작은 할멈처럼 가냘프고 또 할멈처럼 이가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그래서 할멈은 아기에게 다가가 웃음을 띠며 보기 좋은 얼굴을 해 보이려 했다.

그러나 아기는 이 착한 늙다리 여자의 손길에 겁이 나 서 발버둥을 치며, 온 집안에 가득차게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댔다.

그 서슬에 착한 할멈은 제 몫의 영원한 고독 속으로 밀려나, 한쪽 구석에서 울며 중얼거렸다-"아! 불쌍한 우리 늙은 여편네들은 누굴 즐겁게 해줄 나이가 지났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어린애들을 사랑해주고 싶어도 두렵게 할 뿐이구나!"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중에서-

어린 아이를 둔 친구들에게서 종종 듣는다. 아기들이 뭘 모르는 것 같아도 젊은 사람을 훨씬 더 좋아하고 따른다고. 몸집은 덩치 큰 어른들보다는 차라리 나이든 노인과 더 비슷할텐데 무엇 때문에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걸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외모를 보고 나이의 차이를 감별할 수 있는 눈이나 목소리로  역시 나이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귀를 가졌다고 믿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죽음이란 것은 냄새를 가진 게 아닐까.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지는 나이든 사람일수록 죽음의 냄새가 진해지는 게 아닐까. 시각과 청각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들은 후각이 상대적으로 발달해 그 냄새를 어른보다 더 잘 맡는 게 아닐까. 진화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다른 동물에 비해 미성숙된 형태로 태어나는 인간의 아이는 생존을 위해 일정기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 죽음에 가까운 할머니보다는 신체가 젊고 건강한 청년을 더 가까이 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보들레르의 시에 등장한 착한 할멈이 구석에서 흐느끼며 느꼈을 영원한 고독이란 죽음. 사실 할멈을 멀리하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이 세상. 곧 있으면 중력 같은 시간은 할멈을 저 세상에서 계속 끌어당길 것이고, 이 세상은 할멈을 계속해서 죽음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할멈이 그 사실을 제일 모를 것 같은 이 아기 마저도 나를 두려워하는구나하며 탄식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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