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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이와 깊이

거지의 사회적 지위



나는 거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들 역시 일반 사람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회가 그들을 대하는 이상한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 흔히 거지는 일하지 않는 다고 말한다. 그러면 도대체 일이란 무엇인가? 도로 인부는 곡괭이를 휘둘러서 일을 한다. 회계사는 수치를 계산함으로써 일을 한다. 그리고 거지는 어떤 날씨에든 문밖에 서서 정맥류에 걸리거나 만성기관지염 따위에 걸림으로써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생업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아주 무익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럴듯한 다른 많은 생업들도 아주 무익하다. 사회적 유형으로 분류해보자면, 거지들은 특허약품 판매원에 비해 정직하고, 일요신문 경영주에 비하면 마음이 고결하고,(...)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근근이 연명해나가는 그 이상은 짜내지 않는다. 우리의 윤리 관념으로 볼 때 그들은 정당하다. 그들은 사회에게 진 빚을 고통을 당함으로써 갚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거지가 경멸을 받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그들이 적절한 생계비를 벌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이 유용한지 무용한지, 생산적인 것인지 기생적인 것인지에는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단지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이익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돈이 미덕을 가늠하는 위대한 척도가 되었다. 거지는 이 척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멸시당하는 것이다. 만약에 구걸을 해서 일주일에 10파운드라도 벌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존경받는 직업이 될 것이다. 단지 그들은 대부분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명예를 팔지않는다. 그저 부자가 될 수 없는 장사를 택하는 실수를 범했을 뿐이다.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중에서-


적어도 예전,돈을 버는 일이 미덕이 아니었던 시절,에는 고결함의 기준이 부당했을 지언정 천박하진 않았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지금은 무엇이 고결한가, 무엇이 사회적으로 옳은가,를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다. 

이는 나를 구차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 벌이에 대해서 말할 때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예전 직업 급여의 절반의 절반정도라고. 결국 '난 얼마얼마를 벌었던 사람이다'라는 것을 구차하게, 억지스럽게 붙여낸다. 나는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일 자신이 없는 것이다. 덧붙인 말에 숨겨진 의미 '내가 갖고 있는 직업 관념은 당신이 갖고 있는 것에 비해 훨신 더 고결하다. 그러므로 이 정도의 벌이는 나에게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를 결국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나 역시 나의 가치를 돈으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