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넓이와 깊이

말하기를 강요하는 사회


23. 고독

어느 박애주의자 신문기자가 나에게 고독은 인간에 해롭다고 말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든 불신자들의 그렇듯이, 교부들의 말을 인용한다. 

악령이 황량한 장소를 기꺼이 찾아 출몰하고, 살인과 간음의 정신이 적막한 자리에서 멋지게 타오른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러나 이 고독이 위험한 것은 하는 일 없고 방종한 나머지 그 고독을 정념과 망상으로 가득 채우는 혼에게나 오직 해당하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연단이나 강단의 높은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ㅇ르 다시없는 즐거움으로 삼는 수다쟁이가 로빈슨의 섬에 갇히면 광포한 미치광이가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이 신문기자에게 크루소의 용감한 미덕을 촉구하지는 않으나, 그가 고독과 신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탄핵하지는 말 것을 요망한다. 

우리네 수다스러운 족속들 중에는, 단두대 높은 자리에서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을 수만 있다면, 거기에다 상테르의북소리에 의해 연득없이 말이 중단될 염려가 없다면, 극형도 별로 싫어하지 않고 받아들일 그런 작자들이 있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에서-


무소음을 끔찍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적당한 소음이 있어야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람들. 어느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을 때 각자 말없이 각자의 사유에 잠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은 그 '소리없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다. 지난주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배꼽 빠지게 웃겼던 에피소드, 오늘 아침 막장드라마에서 본 이 이상의 막장이 나온다는 것은 경이로울 정도로 막장인 친자 확인 에피소드 등. 그가 가진 모든 기억들을 긁어모아, (혹 그 기억으로 불충분하다면, 그 기억의 짜투리와 조까리들을 어떻게 붙이고 끼워맞춰서라도) 볼성사나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이렇게 막장보다 더 막장스런 이야기 이어가기는 그 이야기만큼이나 둘을 어색하게,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만남이 끝난 후 그자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저 사람 나랑 코드가 맞지 않아" 단지 말이 없다고 해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끼지만, 그저 자기와 맞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변명을 하며 그 사람과 멀리함으로써 실제로는 그 사람을 타박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져오는 윤리적 책임에서 그보다도 더 미끄러울 수 없게 빠져나간다. 이는 사실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다시는 확인하고 싶지않아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하자면 보호본능이 야기하는 반응이다. 다시는 그 사람과 함께 할 자리를 되도록 피함으로써 자신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들을 진정 편하게 하는 것은 말그대로의 평온과 휴식이 아니라, 시끄러운 말로 수없이 덧붙여지는 시간들. 말이 없는 사람들은 신중하다거나 고요를 즐긴다는 죄로 수시로 우유부단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리곤 한다. 어떻게든 말을 내뱉어 자신의 판단을 알려야 하건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결정을 보류하며 자신이 내뱉은 말로 인해 져야 할 책임을 유예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침묵이나 말을 아끼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비판 받는 게 마땅한지는 곰곰히 생각해야 할 문제다. 특히 끊임 없는 소음과 소비와 노동과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구성된 도시라는 사회에서. 말하지 않는 언론은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개인들이 말하기를 강요당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넓이와 깊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못된 방향을 비추는 거울  (0) 2016.01.04
상상쾌락 vs. 오감쾌락  (0) 2015.12.25
할멈과 아기  (0) 2015.12.23
거지의 사회적 지위  (0) 2015.12.19
소통보단 공감  (0)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