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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이와 깊이

중심과 주변이 존재하지 않는 곳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일 수는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당연한 주류 혹은 주변으로 동일시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고 소통해야 한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중에서-


오늘 낮, 희한한, 아니, 기이한 경험을 했다. 

작년 8월 현재 직장으로의 입사를 앞두고 급여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W은행을 찾았다. "어머, **은행에 다니셨었네요?" 정보를 조회해보니 7년 전, 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 지인의 부탁으로 만든 계좌가 있었단 걸 알게 됐고 당시 직장주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이 다음주면 내 직급 앞에 붙을 '계약직'이라는 단어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다. 용돈 같은 급여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곧 '계약직'에다가 평균 소득에 훨씬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주변인이 될 예정이었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정규직'에다가 평균 소득을 웃도는 월급을 받는 주류(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단 사람이라 다른 주변인과는 달랐다(는 걸 내세우며 우쭐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오늘. 전세자금대출 문제로 W은행을 다시 찾았다. "소득이 얼마나 되세요? 연소득 5천만 원 이상이면 대출자격요건이 안되시거든요." (내가 상담했던 상품은 1인가구와 저소득 신혼부부를 위한 대출이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힘차게 답했다. "한 달에 ~쯤 받으니까 전 되는거죠?!" "네. 가능하십니다. 하지만 소득에 따라 대출가능액이 달라질 순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게 받을 수록 더 많이 빌려주겠죠?" "아뇨. 5천만원 이내에서 소득액이 높을 수록 많이 받으실 수 있어요."라는 대답에 "아쉽네요"라고까지 말했다. 순간 난 '저소득층을 위한 상품이라면서 왜 소득에 따라 차별을 두는거죠?'라고 되물을 뻔 했다.

다섯 달 동안 무엇이 달라진걸까. 난 최소한 오늘 낮만큼은 나를 주변인이라고 생각하지도, 남이 나를 주변인이라고 볼까봐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은행에서 난 그저 내 상황에 필요한 혜택을 받고 싶어하는 청년이었을 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난 지금까지 꼭꼭 숨겨두고 있었던 내 안의 타자성과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5개월 전보다 우리 사회의 통념이 정한 기준으로부터,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지난 11월말부터 시작한 요가, 글쓰기 강좌, 책일기, 새롭게 만난 사람들. 어떤 자극이 나를 주류와 주변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 모든 것 덕분일 수도, 혹은 지금 생각해내지 못한 원인 덕분일 수도. 어찌됐든 분명한 건 오늘 난 사소한 사건을 통해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깨달았고, 이 깨달음은 내 안의 타자와 내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더 넓혀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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