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씨, 여자는 밭'이라는 일상적 언설은 여성의 난자도 씨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지만,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성별 제도의 위력 앞에선 아무런 효력을 내지 못한다. 남성이 씨라는 주장은 남성만이 인간 형성의 기원(origin)이며 인류의 본질('man'kind)이며 생산의 주체라는 것을 은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가 진정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행위자로서 남성의 이동성, 자유, 초월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움직이지 않는, 움직일 수 없는 여성은 언제 어디서나 어머니로 환원되고 동질화된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중에서-
씨를 소유한 것만으로도 남자의 할 일을 다했다는 의미처럼 여겨진다. 정희진의 말처럼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난자 역시 정자와 같은 씨다. 여성도 씨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성을 억지로 밭이라 규정지었다. 이를 통해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살면서 '어머니'의 의무를 다하라고 강요한다. 이는 곧 남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씨를 가지고)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의무를 다했으니 살면서 권리만 누리면 되는 것이고,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살면서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 따라서 여성은 성공적으로 '어머니'의 의무를 완수하기 전에는 권리를 갖지 못한다.
막장 드라마(요즘 들어선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에 한번씩은 꼭 나오는 대사가 있다. 바람핀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는 여성이 듣게 되는 말 "남자가 한번 실수 한 것 가지고..." 이처럼 남자의 무책임에서 비롯한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해서 사회는 물론 가정에서도 매우 관대하다. 남성에겐 애초에 의무같은 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자식에 대해 만족스러운(여기서 만족의 주체는 가부장적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모성을 보이지 않는 여성은 가차없이 비난받는다.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심지어 당사자인 여성 본인조차도 자신의 모자란 모성에 죄책감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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