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재구성을 논하는 데 있어서 사실의 왜곡이 사실 자체의 객관성에 의해 자주 제한받게 되며, 사실 주위에 제3자들의 증언, 문서, '물적 증거',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정황들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한 행위를 저지른 사실이나 또는 그 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반면에 우리를 어떤 행위로 이끈 동기들과 행위 자체에 수반하는 우리 안의 열정을 바꾸는 것은 매우 쉽다. 이것은 아주 약한 힘에도 변형되기 쉬운 지극히 유동적인 물질이다. "왜 그랬나?" 또는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라는 질문들에 믿을 만한 대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 상태는 애초에 불안정한 것이고, 그 기억은 훨씬 더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
사건의 진실만 밝혀진다면 가해자에게 충분한(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자면, '충분한'이란 정도조차 '불충분'하겠지만. 법치주의 사회의 상식적인 기준을 토대로) 처벌을 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만,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쉽지 않은 거라고 체념하곤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볼 때면,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나 한다. 이 둘 모두 압제자 혹은 책임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명백한 문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누가 봐도 우리 나라 최고 책임자에게 직무 유기가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처벌로 이어지는 절차(가장 쉬운 단계라고 생각했던)가 어이 없이 막혔다. 대통령이 7시간동안 뭘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아니라 그토록 큰 참사에 벌어지도록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죄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대통령의 행방을 밝히는 것이 국가 기밀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며, 이 상황에 대한 모든 논의를 중단했고, 이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한 셈이 됐다. 나 역시 이 뉴스를 들으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란 참으로 어렵구나하고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의 프레임이 저절로 그들의 것으로 전환됨을 경험했다. 모르겠다. 그 7시간 동안 뭘했냐를 밝히는 것보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를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피해자 할머니들의 경험과 다른 피해국, 중국과 대만 등, 들의 기록에 의해 어느 정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상태다. 이렇게 명백히 죄를 지은 가해당사자와 당사자도 아닌 누군가가 피해당사자로 나서 그 대가를 합의하다니... 얼마나 허술하게 대응했으면, 이제 가해자가 "강제 연행이 아니었다"는 둥 역사적 사실을 뒤엎는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발언을 하게 만드는가. 지금이야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있고, 그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우리가 살아있어 어처구니 없는 망언이라 여길 수 있다치자. 할머니들도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후에 이 역사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위안부 관련 전쟁범죄 사실이 '사실'이 아닌 '논쟁'으로 남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사건에 대해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난 후엔 가해자와 책임자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어쩌면 "진실이 무엇이냐"를 묻는 것만큼이나 "왜 그랬냐"를 묻는 것이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약한 힘에도 변하기 쉬운 유동적인 물질이 완전히 다른 물질로 바뀌어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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